마음대로 54화 - 진심
민국이는 나에 대한 감정을 확실히 말했다.
물론 여자인 지애로서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도 점점 여장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상황들, 여자가 되어 겪는 여러 감정들이
점점 재밌어지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정체성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여자가 되어 민국이를 바라보는 느낌은 분명 전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민국이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여자를 연기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내가 민국이와 손을 잡고 다니고, 팔짱을 거부감 없이 끼고, 오빠라 부르는 것은
지애로서의 나의 감정일 뿐이지, 정말로 민국이에게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생각해봐도 20년 넘게 남자로 살아온 내가 몇 달 여장을 한다 해서
100% 마음 속 까지 여자로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런 생각을 민국이에게 확실하게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나는 여장을 하는 게 재밌어졌고, 여장을 하면서 정말 새로운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것들이 나를 흥분되게 만들었던 건 사실이야. 이전에 경험해보지 않았던 거니까.
여자 옷들을 입고, 너랑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
하지만 내가 여장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런 경험일 뿐, 내 정신까지 여자가 된 것은 아니야.
나는 아직도 내 여자 친구 수정이를 좋아하고, 민국이 너에게는 친구 이상의 그 어떤 감정이 없어.
내가 너랑 하는 스킨쉽도 지애로서의 나의 행동일 뿐, 내 정체성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야.
내가 너의 여자친구로서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짜릿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남자이기에 생긴
기분이라고 생각해. 내가 여자였다면 이런 일들에 짜릿함을 이 정도로 느낄 수 있었을까?
너에게 그 정도의 감정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갈 수는 없어.
민국이는 잠잠히 듣고 있었다. 민국이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걸까?
잠깐 동안의 정도의 적막이 흐르고 민국이가 입을 열었다.
-- 정말, 단순한 여장이었던 거야?
-- 너도 알잖아. 수정이와의 계약에 의한 거라는 거.
-- 그러면 지금 입고 있는 여자 옷도, 단순히 시켜서, 재미있으니까 입는 거라고?
지금 입고 있는 그 바지, 한 뼘도 채 될까 말까 한 길이야.
허벅지까지 맨 살로 내놓으면서 집에서 그런 바지를 입고 있는 이유가 정말 그거야?
집에서도 항상 가슴 패드를 끼고, 옷도 여자 옷들만 가득하고, 필라테스를 받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였던 거야?
나는 네가 네 본심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해. 잘 생각해봐.
지금 너에게 여장은 단순히 취미인지, 그 이상인지 말이야.
네 마음속으로 "앞으로 계속 여자로 사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 아니야... 그건 정말 아니야.
-- 그래? 그러면 난 앞으로 너와 같이 있을 수 없어.
더 이상 너 때문에 헷갈리고 싶지 않아.
민국이는 그 말을 끝으로 자취방을 나갔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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