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외전 4화 - 축제 (하)
#외전 1화 축제(중) 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중편을 먼저 보고 보시길 바랍니다.
동아리의 최대 이벤트 학교 축제.
평소 남자들만 북적북적했던 남고에 여학생들이 찾아와 활기가 넘쳐났다.
이번 축제가 다른 고등학교들이랑 같이 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축제라 그런지 엄청난 인파를 자랑했다.
그 와중에 나는 여장을 하고 동아리 부스를 운영해야 한다..
-- 우리 부스 완성된 거 못 봤지? 보면 지릴걸?
-- 와.. 이거야? 미쳤네.
옆의 다른 동아리들과 차원이 다른 부스가 세워져 있었다. 검은색 부스에 은은한 조명이 비친 분위기 있는
고급 바의 느낌이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비싼 술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 저 술들 진짜야?
-- 진짜겠냐 고등학교인데. 다 모형이지. 어차피 우리가 팔건 무알콜 칵테일 정도야.
-- 형 어때요. 대박이죠? 제가 다 기획한 거예요.
-- 이 정도면 할 맛 나겠는데? 슬슬 시작하자.
우리 부스가 눈에 띄게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동민아, 나 쪽팔린데 어떡하냐.
-- 형 걱정마요. 감쪽같아서 아무도 남자라고 생각 못 할 거예요.
-- 너만 믿는다. 나 할 줄 몰라.
-- 그냥 느낌대로 가는 거죠.
오픈 시작과 동시에 밀려드는 주문을 받았다. 분위기 있게 천천히 받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수많은
손님들이 있어 일단 주문을 받고, 레시피를 보면서 열심히 만들었다.
-- 야 민국이 어디 갔어. 우리 이렇게 두고 다른 고등학교 놀러 간 거 아냐?
-- 그러게요. 너무하네.
그전까지 열심히 부스를 꾸미고 있었던 동아리 부원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다른 여고나 남녀공학 학교로 놀러 갔을 것이다.
결국 우리만 고통받는 것이다..
-- 네 어떤 거 드릴까요?
-- 헉! 남자였어요?
-- 아 ㅎㅎ 네..
주문을 받을 때마다 내 목소리에 남자인 걸 알고 충격받는 손님들을 보면서 뭔가 재밌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했다.
좋은 건 동민이가 덩치도 있고 얼굴도 반반해서 여학생들이 더 많이 몰렸기 때문에 그래도 여자 구경 (?) 은 할 수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고 조금 잠잠해졌나 싶을 무렵..
-- 야 잘하고 있냐?
-- 니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나는 거야;;
민국이가 닭꼬치를 한 손에 들고 나타났다.
-- 지금 다 돌면서 우리 부스 홍보하고 왔다. 얼마나 힘들었는데..
-- 그거 안 해도 우리 인기 엄청 많아.
-- 더 많아질 걸? 예쁜 바텐더 있다고 광고하고 다녔거든.
-- 뭐?
-- ㅋㅋㅋ 난 더 홍보하러 간다.
이 말만 남기고 민국이는 또 사라졌다. 축제가 끝나면 동민이를 없애버리기로 합의했다.
밀려드는 주문을 받다 보니 강당에서 공연이 시작해 그쪽으로 사람이 몰려 잠시 한가해졌다.
-- 형, 저 첫 축제인데, 이렇게 일만 하다 끝나는 거예요?
-- 그러게.. 누구 교대해 줄 사람도 없고 어떡하지.
-- 잠깐만 닫고 나갔다 올까요?
-- 그럴래? 지금 옆에서 공연해서 사람도 없다.
준비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두고 우리는 탈출 (?) 했다.
동아리 부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나와 동민이는 옆 고등학교로 향했다.
-- 여자 옷이라 너무 불편한데.. 구두도 불편하고 치마도 걷기 힘들어.
-- 오늘은 여장하고 있으니까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해봐요.
-- 그게 되겠냐?
-- 이렇게 둘이 다니면 옷도 똑같이 맞춰 입고 커플인 줄 알걸요?
-- ;; 일단 가자.
옆의 고등학교도 역시 축제 분위기로 북적북적했다. 우리 학교 학생도 몇몇 보였다.
우리는 바텐더 복장을 입고 있어서 인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 발이 너무 아픈데...
-- 팔 잡을래요?
-- 안 잡아..
-- 먹고 싶은 거 다 말해요. 다 사줄게요.
-- 그러면 저기 와플 먹으러 가자.
와플 하나를 나눠 들고 우리는 여러 부스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 이렇게 다니니까 데이트하는 것 같지 않아요?
-- 아니 딱히..?
-- 형 말고 누나라 부르면 안 되나..?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 맘대로 해..
그래도 재밌는 부스들이 많았고, 나름 동민이와 재밌게 놀았다.
-- 누나, 여기 수제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으러 가요.
-- 잠깐만 전화 오는데?
-- 민국이 형인가?
전화를 받자 동민이가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야 너네 어디 갔어! 부스 버려놓고!!
-- 사람 없어서 잠깐 놀러 갔지.
-- 부스 이거 얼마 짜린데! 빨리 돌아와!
동민이가 휴대폰을 낚아챘다.
-- 형, 잠깐만 수철이 형이랑 잠깐만 놀다 갈게요. 이따가 봐요.
동민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동민이에게 이런 박력 (?) 이 있을 줄 몰랐다.
-- 가요. 누나.
마치 데이트를 하는 듯.. 우리는 또 다른 학교까지 부스 탐방을 마쳤다.
몸은 힘들었지만 동민이와 함께 한 시간만큼은 재밌게 보내며 그렇게 나의 고3 축제는 막을 내렸다.
축제가 끝나고 부스를 내팽겨쳐둔 죄로 민국이와 동아리원들에게 욕을 무지막지하게 먹었다.
다행히 초반에 손님을 많이 받아서 수입은 꽤 짭짤했고, 동민이가 뒷 처리까지 해서
큰 일은 없었지만 정신없었던 하루에 여장을 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며,
고3이라 입시준비에 몰두해 동민이도 그 이후로 별 교류없이 지내게 되었다.
즉, 나에겐 잊고 싶었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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