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리대 입학식 아침.
한 갈색머리의 남자가 허겁지겁 오리대 캠퍼스 안을 걸어가고 있었다.
-- 실례합니다. 혹시 대강당이 어디일까요?
-- 이쪽 길로 쭉 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돼요.
지금 사람들 대부분이 그 쪽으로 가고 있어서
사람들 따라가면 될 거에요.
-- 네. 감사합니다!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쓴 이 남자의 이름은 진창훈.
이번 오리대 신입생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반에서 혼자 이 대학교에 오게 되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진창훈은
혼자서 외롭게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대강당 입구에서 책자를 건네받고 들어가자, 커다란 대강당의 내부가 들어갔다.
가운데에는 신입생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 이 쪽으로 가면 되는 건가...?
진창훈은 쭈뼛쭈뼛 빈 의자로 향했다.
적당히 가운데 있는 자리에 앉기 위해 이리저리 돌다보니,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 두 명이 있는 자리 옆이 비어있었다.
진창훈은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 옆 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에 앉은 검정 원피스의 여자와 그 옆에 앉은 검정 블라우스의 여자는 서로 친한지,
계속 재잘재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친한가보네...'
진창훈은 입학식이 시작할 때까지 말 없이 앉아 앞을 보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고등학교 반 단체톡을 들어가도 서로 입학한 대학교가 달라 공감가지 않는 이야기 뿐이었다.
-- 후...
진창훈은 입학식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
==========
-- 하-암.
김탁민은 하품을 했다.
대강당은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 가만히 앉아 있으니 조금씩 잠이 오기 시작했다.
-- 여러분들은 앞으로 21세기, 더 나아가 22세기를 이끌 청년들입니다.
여러분이 미래이고, 앞으로의 시대는 여러분들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바로 여기, 오리대는 여러분들의 그러한 희망을 담는 그릇이자,
싹을 틔워주는 화분으로...
김탁민은 작년에 들었던 입학식과 거의 동일한 내용에 너무나도 지루했다.
그 동안 여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유지된 긴장이 가만히 앉아 있으니 조금씩 풀린 탓에,
서서히 눈꺼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김탁민의 머리는 서서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김탁민의 긴 생머리 (사실은 가발이다) 도 서서히 오른쪽으로 스르르 넘어갔다.
기울어지는 중간 중간에 김탁민은 눈이 번쩍 뜨여 다시 정중앙(?)으로 머리를 원위치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스르르 머리통이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김탁민의 오른쪽에 앉은, 진창훈은 갑자기 옆에 앉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자신의 왼쪽 옷깃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 !!!
진창훈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눈알을 굴려 왼쪽을 봤다.
자신의 왼쪽에 앉은 이 여자는 졸려서 고개가 기울어진 것으로 보였다.
점점 더 기울어지는 머리통으로 인해 머리카락은 진창훈의 어깨 끝을 넘어 가슴쪽까지 쓸어내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머리가 더 기울어지다 자신의 어깨에 기댈 판이었다.
진창훈은 속으로 고민했다.
이 사람을 깨워야 하나...?
원래대로라면 깨워야 하는 게 맞지만...
지금의 상황이 속으로 내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과학고 출신의 영재인 진창훈은 지금까지 공부만 하여 연애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정도의 별 것 아닌(?) 상황도 진창훈에게는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것 또한 운명일수도 있어. 내비두자'
진창훈은 자신의 두근거림이 근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길 바라며
땀이나는 손을 꽉 쥐고 앉아 있었다.
한편, 송시아도 마찬가지로 졸음이 몰려오는 상태였다.
엄청 기대했던 입학식이었지만 사실 입학식이라는 게 재미가 있을 수가 없었다.
송시아의 눈꺼플도 점점 무겁게 내려와 입학식 연설을 듣는 둥 마는 둥 졸고 있었다.
-- 총학생회의 말씀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이제 입학식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커다란 강당에 노래가 울려퍼지자, 그 동안 자고 있던 입학생들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 음...?
송시아의 눈도 이 때 갑자기 떠졌다.
눈을 뜨자 마자 입학식이 끝난 상황을 파악한 후, 오른쪽에 앉은 김탁민을 쳐다보았다.
-- 헉!!
은송님!!
송시아가 본 김탁민은 몸이 완전히 오른쪽으로 기울어, 머리는 오른쪽에 앉은 어떤 남자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도 축 쳐져 오른쪽 남자의 몸을 덮고 있었다.
-- 은송님 어서 일어나요!!
-- 음..?
김탁민은 눈을 떴다.
눈을 떠 보니, 입가에 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목이 엄청 꺾여 담이 오려고 하기 직전이었다.
김탁민은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런지 자신의 머리인데도 꽤나 무겁게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김탁민은 머리를 정돈한 뒤 입가에 흘린 침을 손으로 스윽 닦았다.
송시아는 김탁민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 지금 옆에 분한테, 기대서 자고 있었다구요!
-- 진짜?
김탁민은 오른쪽에 앉은 남자 쪽을 쳐다봤다.
그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쓴, 갈색머리를 한 하얗고 뽀얀 피부의 남자였다.
-- 저기요...
-- 네?
김탁민은 조심스럽게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 제가 조느라 그 쪽에게 머리를 기대버렸네요.
민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 아, 괜찮아요!!
김탁민은 자신도 남자였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사과를 받고 있는 이 남자, 여자로 보이는 지금의 자신에게 호감이 매우 있는 상태라는 걸.
김탁민은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해요.
-- 진짜 괜찮아요!
김탁민이 봤을 때 이 남자는 갈색 머리까지 했기에 고등학교 때 조금 놀지 않았나? 싶었지만,
여자한테 매우 어색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의외로 공부만 열심히 한 범생이(?) 였나 싶었다.
자연스럽게 송시아와 김탁민, 그리고 옆에 앉은 남자인 전창민은 일어나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갔다.
-- 그렇게 기대하던 입학식 어땠어?
노잼이었지?
-- 진짜 재밌게 들으려고 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 그렇다니까. 별 거 없어. 꿀잠 잤다 ㅎㅎ
-- 이거 끝나고 뭐 있어요?
그냥 오늘 끝인가.
-- 이제 과 별로 학생회에서 입학생 모아서 이것저것 할 걸?
학교 시스템이랑 교수님들, 동아리 등등 알려줄거야.
김탁민과 송시아는 나와서 스윽 돌아보니 저 쪽에 컴퓨터공학과 과잠을 입은 인원들이 보였다.
-- 저기있네 컴공.
-- 오... 멋지다 선배님들.
김탁민은 원래도 컴퓨터공학과였지만, 김은송으로 입학한 뒤에도 같은 컴퓨터공학과로 왔다.
처음에는 같은 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과를 옮겨달라 했지만,
송시아가 컴퓨터공학과로 가고 싶어했고 같이 가야 한다고 우겨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은 컴공으로 오게 되었다.
-- 그렇게 치면 나도 선배야.
-- 은송님은 동기죠.
신입생 동기 ㅎ
-- 그래, 맘대로 해라.
일단 따라가자.
컴퓨터공학과 과학생회 회장인 윤회장은 분주하게 강의실 세팅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은 컴공과 전공과목이 주로 잡히는 강의실이자 이번 컴공과 오티를 하기 위한 장소였다.
-- PPT 슬라이드 넘어가는 것 확인.
수정본인것도 확인...
-- 윤회장~
고민창이 어슬렁거리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 민창아. 오랜만이네.
전역했으면 연락을 해야지.
-- 오니까 다들 윤회장이라고 부르더라.
우리 희재형 성공했어.
-- 성공은 무슨. 사람도 없어서 이렇게 직접 다 챙기고 있는데.
-- 이번에도 오티 중에 선배와의 대화 시간 있냐?
-- 만들긴 했는데, 지금 사람이 몇 없어서 다 붙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나도 선배로 껴주라.
-- 학점 2점대에 수상경력도 없는 사람을?
-- 그건 코딩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런거고.
또 다른 건 내가 잘 알아.
식당 꿀 메뉴 이런거.
-- 맘대로 해. 나 바빠.
-- 알았어.
고민창은 다시 어슬렁거리며 강의실을 나갔다.
조금 뒤, 김탁민과 송시아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 여기 신기하다. 자리마다 컴퓨터가 다 있어요.
-- 뭐 다들 자기 노트북 쓰기는 하지만...
어디 앉을까?
-- 이쪽 가운데 정도에 앉죠.
김탁민과 송시아는 자리에 앉았다.
너무나 빨리 온 탓인지 둘 빼고 아무도 없었다.
-- 우리가 너무 빨리 왔네. 앞에도 희재형밖에 없고.
-- 저 분은 누구에요?
-- 올해 활동하는 과 학생회 회장인데, 이름은 유희재야.
-- 아하.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김탁민은 자신의 휴대폰을 봤다.
여장을 하고 김은송으로 살기 시작한 뒤로, 휴대폰 유심칩을 바꿔 번호를 바꾼 상태였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한테 김은송의 번호를 알려줄 수 있었다.
그 비용은 전부 자생교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송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 미션에 대해서는 생각해봤어요?
-- 무슨 미션? 지금 잘 하고 있잖아.
-- 남자에게 3번 고백받으면, 조기 완료가 가능해요.
-- 조기 완료? 처음 듣는데.
-- 그 때 제가 방에 들어가서 분명 말했던 내용이에요. (2화 참조)
1년을 안 채우고도 완료할 수 있는 방법.
-- 고백이라... 남자일 때도 고백받아본 적은 없는데 과연 될까?
-- 전에 있었던 여자친구분은 직접 고백한 거에요?
-- 내가 고백했지.
송시아는 김탁민이 더 이상 전 여자친구 얘기에 대해 말하기 싫어하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계기가 자생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 지금은 여자니까 고백받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거에요.
-- 고백을 하게 만든다 쳐, 그러면 결국 거절해야 하잖아.
내가 사귈수도 없는 노릇이고.
-- 사귀면 되죠. 연애하는게 나쁜 건가요 ㅎㅎ
-- 아니, 내가 이 모습으로 남자랑 연애까지 해야되겠냐고.
-- 뭐, 선택이니까. 조금 더 빨리 완료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에요.
김탁민은 자신이 고백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고백을 하려면 뭔가 이것저것 교류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김탁민이 고민하는 사이, 한 남자가 문을 열고 쭈뼛쭈뼛 들어왔다.
바로 진창훈이었다.
김탁민은 들어오는 진창민을 보는 순간 눈이 커졌다.
아까 입학식 때 바로 옆에 앉았던 바로 그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김탁민은, 고백 미션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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