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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여장소설] 연애요람

[여장소설] 연애요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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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김탁민은 뒷 문을 열고 쭈뼛쭈뼛 들어오는 남자가 방금 전 입학식 때 마주쳤던 그 남자인 걸 확인한 순간,
고백 미션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 저 분, 아까 우리 옆에 앉았던 사람 아니에요?

-- 응. 맞아.


김탁민과 송시아는 들어온 진창훈이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 반갑습니다. 빈 자리에 앉아주세요.


앞에서 강의실 세팅 및 준비를 하고 있던 과학생회 회장 윤회장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 들어오신 컴공과 신입생분들 환영합니다.
    잠시 후 오티 시작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진창훈은 자연스럽게 김탁민과 송시아가 앉은 뒷쪽 줄에 앉았다.
김탁민과 송시아는 여전히 머리를 맞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 아까 너가 말한 미션 완료,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 고백 3번 받는거요?

-- 응. 이건 내가 증명할 수 없잖아.

-- 고백의 순간 자체는 제가 확인할 수 없으니,
    일단 은송님이 고백을 받고 저에게 알려주세요.
    그러면 제가 판단해서 성공이라고 보고할게요.

-- 고백을 받은 뒤에는 거절해도 상관 없는거지?

-- 뭐 쭉 연애하다가 결혼까지 가는 것도 추천드리긴 하지만...

-- 무슨 결혼이야. 이 모습으로.

-- 신부가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요 뭐.

-- 뭐라는 거야...;;
    고백을 받으면, 내가 최대한 상처받지 않도록 거절할거야.
    지금이 1학년 신입생이라, 오히려 가능성 있어.


김탁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래는 1년동안 여장을 할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고백받는 게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신입생의 경우 썸, 고백, 연애가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이다.

조금만 마음에 들어도 고백하고, 또 헤어지기도 한다.
이전의 누군가를 거절했거나, 누군가 사귀었거나 하는 과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김탁민은 지금의 여장한 김은송이 아닌 원래의 김탁민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지금의 자신이 김탁민이라는 게 절대 알려지면 안 되었다.

혹시라도 알려지는 순간, 여장을 하고 여러 남자한테 고백을 받고 다닌 이상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었다.


-- 일단 첫 번째 타겟은 정했어.

-- 오 누군데요?

-- 우리 뒤에 있는 저 남자.

-- 설마 은송님이 머리를 문대고 민폐를 끼친?

-- 그 정도는 아니었어...


김탁민은 첫 번째 목표로 진창훈을 선택했다.
잠깐의 대화 및 분위기로 알게 된 것은 진창훈이 지금의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관계를 유지한다면 고백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조금만 잘 해주면 고백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 오.. 남심 마스터.

-- 남심 마스터가 아니라 남자였으니까, 어떤 느낌인 지 잘 알지.


두 명의 여자(?)가 속닥이는 사이, 앞에서 윤회장은 다시 마이크를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 자, 이제 다들 오신 것 같으니 오티 시작하겠습니다.
    앞에 띄워진 PPT를 봐주세요.


김탁민과 송시아는 잠시 얘기를 멈추고 앞을 보기 시작했다.
바로 뒤에 앉은 진창훈도 앞의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 아마 원서를 쓰고 저희학교 학과를 선택하면서 다들 들으셨겠지만,
    컴퓨터공학과의 특성 상 필수 전공과목 및 선택 전공과목이 상당히 많습니다.
    선택과목이 굉장히 다양하게 열리기 때문에 이 중에서 
    백엔드, 프론트엔드 등 여러 진로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각자 선택을 하시면 되고
    대신 아예 관련 없는 문학, 철학, 예체능 등의 교양수업의 경우 상당히 들을 수 있는 폭이 제한되실거에요.


송시아는 되게 번뜩이는 눈으로 윤회장이 말하는 내용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김탁민은 이미 1년을 다닌 상태로 이제 2학년이 되는 만큼 전공과목에 대해서 어느정도 다 알고 있었기에
바로 뒤에 있는 저 남자에게 어떻게 고백을 받을 지 고민중이었다.


-- 특히 저희 과의 특성 상 실습 수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타 과의 경우 과목 명에 '실습' 또는 '실험' 이 붙는 과목만 실기 및 실습이 이루어지는 편인데 비해,
    저희 컴퓨터공학과는 기본적으로 모든 수업에 코딩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습이 상당히 많고
    따라서 4학년까지 사용할 노트북을 꼭 구비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뭐, 저희 과에 오시는 분들은 이미 이 쪽으로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다들 말씀 안 드려도 알아서 준비하셨을거에요.


진창훈도 꽤나 집중해서 내용을 듣고 있었다.
다만 조금은 신경쓰이는 점은 바로 앞 줄에 앉은 여자 두 명.

방금 전 입학식에도 바로 옆에 앉았던 사람이었는데,
알고보니 같은 과였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특히 오른쪽에 앉은 검정머리의 여자가 특히 눈에 띄었다.
방금 전, 자신을 보면서 사과하는 모습에 진창훈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청순하면서 맑아보이는 인상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진창훈은 앞에 있는 윤회장의 강의를 들으며 앞에 있는 검정 긴머리의 여자를 흘깃 쳐다보았다.
꽤나 지루해보이는 포즈로 듣는 둥 마는 둥 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 앉은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되게 열심히 듣고 있는 것과 상반되었다.


'재수를 해서 이런 신입생 오티가 두번째인건가...?'


마치 2회차인 것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진창훈에게 궁금증을 유발했다.



윤회장은 이어서 말했다.


-- 이제 학교 시스템 전반에 걸친 내용은 다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학생회에 관심 있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을 거에요.
    저는 이제 과 학생회 회장을 맡게 되었구요.
    과 학생회는 1학년도 참여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다른 과와 교류도 많이 하고 싶다.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저희끼리 엠티도 가고 학교 축제나 여러 행사에 있어서 참여하면서 좋은 경험 많이 하실 수 있어요.


김탁민은 송시아에게 속삭였다.


-- 너는 학생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 아뇨, 이미 저희 교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어서 이미 바빠요.

-- 맞다, 너 무슨 회장이라 했지?

-- 자생교 남부 청년 회장입니다.

-- 너 나름 권위있는 자리에 올랐구나.
    이제 스무살인데 너무 빠른 거 아냐?

-- 그래도 제가 꽤 오래 다녔어요.
    나름 신앙심도 두텁구요.

-- 요즘엔 신경을 많이 못 쓴거 아냐?
    맨날 나랑 같이 다니고 나 관리하느라고.

-- 올해에 제가 맡은 가장 중요한 미션 중 하나라서요.
    이 정도 시간 쓰는 건 괜찮아요.
    거기에 제가 이 학교를 오는 것도 다 알고 계시구요.


-- 그렇구나...


윤회장은 왼손에 들고 있던 버튼을 눌러 피피티를 넘겼다.
피피티는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 저희가 준비한 자료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세요, 좀 유익하셨을까요?

-- 네~


강의실에 있던 약 100명의 신입생이 대답했다.
김탁민은 이번 신입생 후배들이 꽤나 열정있다고 느꼈다.


-- 네, 긴 시간 지루하셨을텐데 잘 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여러분의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
    저희 과의 전통,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시작하도록 할게요.
    저희 선배가 현재 열 분...? 정도 준비되어 있어요.


윤회장은 말하며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확인했다.
워낙 급하게 준비하다보니 과 학생회 인원들 다수가 입학식 관련 준비에 참석하게 되어 
오티 준비하는 인원이 꽤나 부족한 상황이었다.


-- 다시 세어보니 열 두 분 정도 되는 선배님이 계십니다.
    지금 간단하게 조를 만들어서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거에요.
    8명~9명 정도로 조를 만드시면 선배들이 배정되고 편하게 대화하시면 됩니다.
    궁금한 점 질문하시면 친절하게 알려드릴거에요.
    끝나고 선배들과 같이 식사를 하셔도 됩니다. 말씀드리면 대부분 밥을 사주시니까 잘 졸라보세요 ㅎㅎ

-- 예~~


선배들이 밥을 사준다는 말에 신입생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 다들 아직 서먹서먹하시겠지만, 오늘부터 친해진다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조를 만들어주세요!


조용하던 강의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몇 명의 학생들은 서로 알던 사이인지, 순식간에 8명의 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 우리도 두 명이니까 얼른 만들까요?


송시아는 그래도 지금의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 그래. 일단은...


김탁민은 몸을 뒤로 돌려 바로 뒷 줄에 앉은 진창훈에게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진창훈은 눈치를 보고 있다 깜짝 놀란 듯 대답했다.


-- 아, 안녕하세요!

-- 저희 아까도 봤었고, 이렇게 같은 학과까지 왔네요.
    지금 조 짜는데 같은 조 하는 거 어떠세요?

-- 네. 좋아요.


김탁민은 속으로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여러가지로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면 분명 미션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면 저희 셋이서 조금 더 모아보죠.

-- 네.


혼자, 혹은 둘이서 온 학생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한 조를 만들 수 있었다.
조가 정해지자, 선배 한 명이 배정되었다.


-- 반가워요. 저는 고민창이라고 합니다.
    올 해 3학년이구요. 복학했습니다.


김탁민과 송시아, 진창훈과 나머지 5명은 박수를 쳤다.
하지만 김탁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고민창은 김탁민의 학년인 현재 2학년들한테도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이 여자 저 여자 다 발을 걸치고 다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실제로 김탁민의 동기 여자 중 한 명을 입학하자마자 들이대서 사귀었다가 한 달 만에 헤어진 적도 있었다.


-- 궁금한 것 있으시면 알려드릴게요.


조의 선배로 오게 된 고민창의 시선은 어느새 김탁민에게 향하고 있었다.


8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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