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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여장소설] 연애요람

[여장소설] 연애요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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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김탁민님의 미션은...
    다음 한 해 동안, 여자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 나는 남자인데, 어떻게..?

-- 여장을 해야겠죠?

-- 여장을 하고, 여자로 생활하라고?

-- 네.


김탁민은 송시아를 보고 있던 고개를 돌려 그의 어머니 쪽을 바라보았다.


-- 엄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안 될게 뭐니, 우리 아들 곱상하게 생겨서 딸로 키워도 예쁠거라 생각했는데.
    딸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 아니, 그렇다고 멀쩡히 대한민국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한테 여장을 하라니.

-- 여자로 생활하게 된다면, 그 동안 틀어졌던 음과 양의 조화가...

-- 그 놈의 음과 양 집어치우고!!


김탁민은 점점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2대 1의 상황, 이대로 가다가는 당장 내일부터 여자로 생활해야 될 판이었다.


-- 여장과 여자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지원은 저와 저희 자생교에서 지원할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그런 걱정이 아니잖아요...
    절대 못해. 안 그래도 군대도 가야 해서 마음 복잡한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그냥 휴학하고 입대할거니까 막지 마.

-- 탁민아, 엄마 한 번 딱 믿고 1년만 여자로 살자.
    탁민이 너에게도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거야.

-- 맞아요. 탁민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대한민국 성인 남자 중에 여자로 사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 절대 안 한다니까.

 



김탁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방 쪽으로 향했다.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방 문을 닫은 뒤, 자신의 게이밍 의자에 앉았다.


-- 후... 다들 미쳐가나봐.
    진작에 엄마를 말렸어야 했는데.


김탁민은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게이밍 데스크톱의 전원을 켰다.
시험공부 때문에 한동안 자취방에서 생활하여 집에 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컴퓨터 배경화면조차 반가웠다.


-- 생각해보니, 나 오늘 종강했지.
    별의별 일이 다 있네 진짜.


게임을 하러 게임런처를 킨 순간,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송시아가 들어왔다.


-- 실례합니다.

-- 남의 방 함부러 들어오기 있어요?
    얘기 끝났으면 우리집에서 좀 나가요.
    그리고 우리 엄마한테도 그만 들러붙고요.


김탁민은 송시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모니터 화면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 바로 거절하실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 그런 미션을 세상에 누가 한다고 하겠어요.
    알았으면 좀 나가라고.

-- 이런 조건을 걸면 어떨까요?

 



김탁민은 송시아의 말을 듣지 않은 채로,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게임은 전체화면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탁민님의 어머님은 저희 자생교의 성실 신도로, 
    헌금도 많이 하시고, 봉사활동도 같이 많이 하고 계십니다.
    저랑도 많은 미션 및 활동을 하고 있구요.

-- ....

--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자생교 남부 청년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쪽에서는 꽤나 힘 좀 쓰고 있다는 것이죠.
    탁민님이 이번 미션에 협조해주신다면, 어머님을 제가 보살펴드리겠습니다.

-- 뭐라고 했어 지금?


김탁민은 잠시 게임을 멈추고, 책상 옆에 서 있는 송시아 쪽을 바라보았다.
김탁민은 이제 김시아에게 존댓말을 유지할 정도의 자제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 제가 어머님을 보살펴드리겠다구요.

-- 우리 엄마 얘기 하지 마.
    너가 뭐라고 우리 엄마를 입에 담아.

-- 아시겠지만, 자생교에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정말 힘듭니다.
    이번에 탁민님이 협조해주신다면, 어머님을 서서히 자생교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해드리죠.

-- 너가? 어떻게?

-- 말씀드렸잖아요. 자생교 남부 청년 회장을 맡고 있다고.

-- 지금 나 가지고 장난치는 거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도 가지고 놀고 있는 거고.
    나는 너네 쪽 사람들 안 믿어.
    너네들 때문에, 나는 내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어. 알고 있어?

-- 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꼭 믿어주세요.


김탁민은 단호한 척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사이비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 지킬 생각이 있는 약속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김탁민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큰 소원이었다.


-- 내가 왜 너를 믿어야 하는데?

-- 만약 탁민님이 협조하시고 바로 이번 미션을 진행한다면,
    곧바로 어머님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저희 자생교에는 '졸업' 이라는 제도가 있거든요.


김탁민은 이제 완전히 송시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어머니를 서서히 졸업에 다다를 수 있게 해드리죠.
    미션을 성실히 수행하신다면, 어머님의 졸업은 무사히 진행된다는 점 약속드립니다.

-- 아까 거실에서 말한 미션, 다시 한 번 설명해줘.

-- 탁민님의 미션은 간단합니다.
    내년 1년동안, 여장을 하고 생활하는 것.
    그리고 기간을 단축하고 싶으시면, 남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은 채 3번 남자에게 고백을 받으면 됩니다.

-- 뭐야, 아까는 뒤에 내용이 없었잖아.

-- 뒤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내용이고, 꼭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남자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은 채로 고백을 받으신다면,
    여자의 삶을 성실히 수행한 것으로 판단하여 미션 조기 완료를 해 드리는 것입니다.

-- 우리 엄마를 빠져나오게 해 준다는 약속, 지켜야 할 거야.

-- 그 부분은 저와 탁민님 둘 만의 약속으로 하죠.
    하지만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김탁민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송시아는 김탁민의 뒤를 따라 거실로 나왔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김탁민의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는 김탁민을 쳐다봤다.


-- 엄마, 할 말이 있어.

-- 응, 잘 생각해봤니?

-- 아까 말한 미션, 내가 할게.
    내년 1년동안, 여자로 살아볼게.


김탁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자로 살기는 정말 죽어도 싫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잘 생각했어.

-- 여기 종이에 서명하시죠.


김탁민의 미션 수행 각서는 지장이 찍혀졌다.
각서의 내용은 송시아가 방금 전 말한 거의 그대로였다.
김탁민이 처음 본 내용은, 김탁민이 지금 1학년으로 다니고 있는 오리대의 신입생으로 다녀야 한다는 것.


-- 여장을 하고 우리 학교에 입학하라고?
    어떻게?

-- 여장을 하고 지낼 신분은 저희쪽에서 드릴거에요.
    학교랑 다 얘기를 마친 상태로, 신입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도와드리죠.
    기존 탁민님은 1년동안 휴학처리가 될 테구요.

-- 치밀하기도 하네.

 



송시아는 계약이 완료된 걸 확인한 순간부터, 갑자기 바빠진 듯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네. 준비됐습니다.
    그 쪽도 지금 준비 되었을까요?
    네.


송시아는 전화를 끊고 말했다.


-- 탁민님, 저랑 같이 가시죠.
    생활할 방은 추후 제공할테지만, 일단 오늘 하루 여장을 할 장소를 마련해두었습니다.

-- 오늘부터...? 내년 1년 동안이라며.

-- 김탁민님은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남자로 살아왔어요.
    여자로 생활하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 법이죠.
    뭐, 내년까지 2주도 안 남기도 했구요.


이미 미션을 하겠다는 각서도 쓴 마당에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김탁민이었다.
김탁민은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송시아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의 앞에는 회색 빛깔의 봉고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아마도 교회 셔틀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 이 차에 타시면 됩니다.


덜컹거리는 차의 조금은 투박한 승차감을 느끼며 도착한 곳은 한 샵이었다.
샵의 직원들은 송시아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 또 오셨네요.

-- 네. ㅎㅎ
   오늘은 제가 받을 건 아니고, 여기 이 분이 받을거에요.

-- 아~ 그때 말씀하셨던 그 분이구나.

-- 네 맞아요. ㅎㅎ


김탁민은 쭈뻣거리며 송시아를 따라 샵의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샵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여기저기 있고, 반짝이는 조명과 커다란 거울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김탁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모의 샵에 당황했다.


김탁민은 자신의 앞에 걸어가고 있는 송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 저기...

-- 네?

-- 오늘 여기서 여장을 하게 되는 거야?

-- 제가 특별 고객으로 요청해두었어요.
    제모부터 사이즈에 맞는 옷, 그리고 메이크업까지 풀세트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김탁민은 갑자기 정신이 아늑해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의 여장을 도와준다고...?
이 부끄러운 일을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공유해야 한다니,
정말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의 수치심이었다.


-- 왁싱부터 할게요.

-- ???


김탁민은 거의 강제로 왁싱 코너로 밀어 넣어졌다.
송시아는 김탁민에 대한 배려(?) 차원으로 따라 들어가지는 않았다.
안에서 울려퍼지는 김탁민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송시아는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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