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라치남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 및 등장인물, 설정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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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요람, 인재 양성의 장'
오리대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 곳곳에 붙어있는 현수막에는 위와 같은 글귀가 써 있었다.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교라는 더 큰 세상에 오게 된 신입생들은 언제 친해졌는지,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는 작은 대화소리가 모여 북적북적함을 이루고 있었다.
-- 아.. 아.. 이제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 주세요.
강당 앞에서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울려퍼지자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있는 신입생들,
그리고 양 옆으로 놓여진 의자에 앉은 학부모 및 선배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 중간쯤에 앉은 여자 두 명, 그 중 오른쪽에 앉은 송시아가 옆에 앉은 김은송에게 말을 걸었다.
-- 입학식을 두 번 하게 된 기분 어때요?
-- ...
김은송은 지루하다는 듯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검정 원피스에 하얀 양말, 검정 구두를 신고 있는 김은송이었다.
-- 여대생으로 보낼 대학생활에 두근두근 하지 않나요?
-- 두근두근한 건 너겠지.
말 좀 걸지 말라고.
-- 칫. 이왕 여장 하게 됐으면 좀 즐기라구요.
-- 즐기기는 뭘 즐겨.
스무살 새내기이자 여대생으로 보이는 김은송은 사실...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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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어느 금요일.
마지막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건물을 빠져나왔다.
-- 잘 봤냐?
김탁민이 옆에 있는 정우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족보 그대로 나왔던데? 순서만 좀 달라지고.
-- 족보는 또 어디서 났는데?
-- 야, 내가 중간고사 때 줬던 파일 있었잖아.
민창이형이 줬던 거.
-- 거기에 기말고사 시험지도 있었냐?
말 좀 해주지. 그냥 피피티 쌩으로 공부했는데.
-- 끝난시험 말해 뭐하냐. 이제 종강인데.
이렇게 1학년도 끝나는구나.
--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김탁민과 정우배는 학교 근처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 이모~ 여기 짜장면 두 개 주세요.
탕수육도 중자로 하나 주세요.
김탁민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짜장면을 시켰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김탁민과 정우배는 종종 여기 짜장면집에 오곤 했었다.
-- 이제 낼부터 뭐 할거냐?
-- 내일부터가 아니라 당장 오늘부터 사진찍으러 가야 돼.
-- 맞다. 너 쇼핑몰 모델? 그런거 한다 했었지.
-- 알바라 생각하고 하면 나름 괜찮아.
돈도 꽤 많이 주고.
김탁민은 맞은편에 앉은 정우배를 찬찬히 흝어보았다.
180센치가 넘는 큰 키에 작은 얼굴.
그 사이에 오밀조밀 들어가 있는 큼지막한 눈코입.
모델 일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우배는 길쭉한 기럭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몸은 꽤나 볼품없다고 느끼는 김탁민이었다.
168cm의 작은 키에 너무나 마른 몸매.
기본적으로 뼈대가 마르고 근육이 없어 남성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살을 찌기 위해 칼로리가 높은 음식만 마구 먹었던 적이 있었지만,
살이 전혀 찌지 않고 속만 느글거렸던 기억도 있었다.
-- 부럽다 부러워. 그 키에 그 얼굴에.
-- 뭐라는거야. 이게 밥 먹여주냐?
-- 돈 번다며. 나 봐봐. 내가 모델 일 할 수 있겠어?
-- 너는 몸이라도 좀 키워라. 너무 말랐어.
헬스도 좀 다니고 말야.
종강했으니까 시간 있잖아. 몸 좀 키워.
-- 그게 맘처럼 쉬워야 말이지.
티격태격 하는 사이에 짜장면 두 개가 나왔다.
김탁민은 고추가루를 듬뿍 뿌려 비비기 시작했다.
-- 그래서, 이제 뭐 할거야?
-- 방학때? 일단 본가 내려가야지.
시험공부 한다고 못 봰지도 거의 3주가 넘었다.
-- 어머니는 아직도 그 쪽에 심취하고 계시는 거야?
-- 뭐 그렇지...
교회도 꼬박꼬박 나가고 헌금도 내시고.
김탁민의 어머니는 사이비교에 심취해 계셨다.
자생교라는 곳인데, 만인의 영생을 목표로 하는 흔한 사이비교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김탁민의 어머니는 열성 신도라 할 수 있을 만큼 진심이었다.
정우배는 짜장면을 한 입 물어 먹은 뒤 말했다.
-- 양미하고는 오해 아직도 안 풀렸고?
-- 이미 끝난 얘기를 뭘 또 말하냐.
오해 풀고 말고 할 것도 없다.
-- 그래. 또 다른 사람 만나면 되지.
여섯 달 사귀었으면 많이 사귄거다.
-- 너나 여자친구 좀 만들어. 그 얼굴이랑 몸이 아깝다.
안 쓸거면 나 주고.
-- 맘에 드는 사람이 없다.
-- 너가 다 찬다 이거지?
이 새끼 아주 배가 불렀어.
정우배는 젓가락으로 단무지를 집어 짜장면 소스를 스윽 묻혀 입에 넣었다.
-- 언제 먹어도 맛있냐. 이 집은.
-- 그니까. 이제 가자.
김탁민과 정우배는 짜장면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 이제 셤 결과랑 학점 나올 때 까지는 잠잠하겠네.
-- 나오면 바로 공유하고, 너 일 하다 시간 되면 말해.
방학 때 여행 한 번 가자.
-- 그래. 너 버스 왔다.
집 조심히 가고. 안녕~!
김탁민은 정우배에게 인사한 뒤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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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나 왔어.
김탁민은 집에 들어가며 어머니를 찾았다.
-- 엄마?
김탁민은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으나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또 교회 가셨나...
김탁민은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엄마 어디야?
나 집 왔어.
-- 응, 탁민아~
엄마 곧 갈게.
지금 시아님이랑 같이 있거든.
금방 갈테니까 냉장고에서 과일 깎아놓은 거 먹고 있어.
-- 응 알았어.
김탁민은 전화를 끊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웠다.
불이 꺼져 있어 조금은 어둡고 음습한 거실의 풍경.
소파에 누워 앞 쪽을 바라보니, 여러 장신구들이 보였다.
김탁민의 어머니가 교회에서 가져온 여러 신앙 물품이었다.
-- 저런 거 받아오는 데 돈을 얼마나 냈을까...
우리 집 돈도 없는데.
김탁민의 집은 아버지가 외벌이를 하고 있었다.
김탁민의 아버지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만큼 김탁민의 가족이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았기 때문에,
김탁민은 자취방의 월세를 스스로 알바를 해서 내고 있었다.
-- 그러고보니 자취방 계약도 이번달까지네.
월세 올려달라 하지는 않겠지...
돈도 없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김탁민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 탁민아.
-- 음..?
-- 일어나야지.
김탁민이 눈을 뜨자, 어느새 밝아진 거실에 어머니와 생판 처음 보는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 이 분이 탁민님이구나~
안녕하세요.
-- ??
-- 탁민아, 시아님 처음 뵙지?
인사해. 송시아님이야.
엄마의 소개로 인해 갑자기 송시아라는 사람과 인사를 하게 된 김탁민이었다.
김탁민은 송시아를 찬찬히 흝어보았다.
자신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얼굴, 나름 귀여운 상의 둥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 아.. 안녕하세요.
김탁민입니다.
-- 어머니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자생교 남부 청년 회장을 맡게 된 송시아라고 합니다.
-- 회장.. 이요?
김탁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네. 청년 회장을 맡고 있어서요.
탁민님에게 미션이 생겨 전달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김탁민은 미션이란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김탁민의 어머니는 자생교로부터 여러 미션을 받아 수행하고 있었다.
보통 어떤 과일 사서 교회에 제출하기 같은 단순한 미션도 있었지만,
김탁민 본인도 같이 해야 하는 미션도 있어 꽤나 골치아팠다.
아무리 자생교를 그만 믿고 빠져나오라는 말을 해도, 김탁민의 어머니는 전혀 듣지 않았기에
김탁민은 그냥 포기하고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하곤 했었다.
-- 탁민이 너도 이제 스물 한 살 되잖니.
이번에 좀 더 어려운 미션이 생겨서 말야.
-- 엄마, 이런 건 엄마가 말려야지.
엄마가 나서서 더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
-- 탁민님,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시죠.
어느새 거실에는 김탁민, 김탁민의 어머니, 송시아가 둥글게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는 김탁민의 어머니가 준비한 다과가 조금 놓여 있었다.
-- 그래서 그 미션이란게 뭔데요?
-- 김탁민님은 이제 스물 한 살이 되시죠?
-- 아직 2주 정도 남긴 했는데... 뭐 그렇죠.
-- 김탁민님은 약 20년 가까이 남자로 살아오셨을 거에요.
이건 음과 양의 조화에 어긋나는 일이죠.
-- ...?
김탁민은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당연히 사람은 남자와 여자 중 하나로 살지, 무슨 음과 양이 나오는 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 저희 자생교에서 판단한 결과, 김탁민님은 양의 기운이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점은 개개인의 최대한의 삶, 영생과 거리가 매우 먼 것이죠.
-- 저는 영생은 필요 없고, 편하게 살다 가고 싶은 마음 밖에 없어요...
-- 탁민아. 그렇게 말 하면 안 되지.
-- 딱 1년만 제가 알려드리는 미션대로 하신다면, 탁민님과 어머님의 삶이 완전 바뀌게 될 것입니다.
김탁민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송시아는 약간의 설전을 벌인 뒤에야,
김탁민은 결국 억지로라도 이 미션을 해야 하겠구나 싶은 결론에 다다랐다.
-- 그래서, 미션이 뭔데요?
-- 김탁민님의 미션은...
다음 한 해 동안, 여자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 ...?
김탁민은 송시아와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 둘은 전혀 이상한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
-- 나는 남자인데, 어떻게..?
-- 여장을 해야겠죠?
-- 여장을 하고, 여자로 생활하라고?
-- 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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