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고백공격, 성공인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었지?
맞다. 나는 지금, 고백을 하고 있었다.
과 후배이자, 동아리 후배인 아지에게.
손에 들고 있는 이 꽃은 뭐지?
어떤 할머니께서 주신 꽃이다.
사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겠어.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어….
하지만, 내가 들고 있는 이 꽃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너의 마음을 표현해.
다 너 덕분이라고. 정말 고마웠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정말 너무나도, 즐거웠다고…….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용기를 내본 것이.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아지에게.
나는 지금,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아무도 없다.
내 앞에는 오직 아지만이 서 있었다.
아지의 뒷모습만이 보인다.
눈 앞이 흐려진다.
너무 긴장해버렸나?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린 건가?
아니야. 후회는 없다.
아지가 내 고백을 받아도, 거절해도 상관없어.
다만 내 고백을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내 마음만이 전달되었다면 좋겠어…..
아지가 내 쪽으로 돌아본다.
눈 앞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지의 대답을 듣고 싶어.
대답을 듣고 싶다고!
제발, 기운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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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깊은 잠에 빠진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 내게 최면이라도 건 것처럼, 의식은 돌아오고 있지만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함을
몸 전체로 느끼고 있었다.
떠오르는 가장 마지막 기억은 내가 아지한테 고백했던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으로 셀 수 없이 연습했던 그 장면,
하지만 나는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 대답을 들었지만 내가 잊어버렸을 지도…
아니면 대답을 듣는 것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서 했던 연습은 고백하는 그 순간까지 일 뿐, 대답 이후의 상황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기력함이 점점 가라앉고, 몸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고백하고 현기증에 쓰러져버린 건가?
아니, 고백을 하긴 한 건가?
그냥 꿈이었던 건가?
그렇네, 꿈이었어.
나 따위가 그 정도의 용기를 냈을리가 없지.
아무것도 못 하고 평생 바라만 보다가 당연하게도 잊혀지는 그런 사람,
아니, 잊혀지면 감사한거지.
그 존재 자체도 몰랐던 사람. 그게 바로 나란 사람이다.
흑흑…
꿈속에서도 이렇게 슬퍼야 하나….
현자타임이 올 때쯤, 머리부터 기운이 돌아오는지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지?
처음 보는 천장이었다.
병원인가….?
쓰러져버린 나를 아지가 업고 병원까지 와 준건가?
아니, 119에 신고만 하고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야. 아지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니야.
내가 기운을 차리길 바라며 옆에 있을지도 몰라..
더욱 힘을 내어 상반신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머리를 움직이는데 이상한 푸석푸석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것은 머리카락인가…?
내가 누워있던 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방도 아니었다.
여긴 어디지?
장소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나의 모습,
내가 느끼는 나의 기운이
원래의 나와 매우 달랐다.
== 아… 아….
내 목소리도 달라졌다.
이 목소리는...
아지의 목소리이다.
음…..?
내가 있는 방의 한 쪽 구석에는 장신 거울이 있었다.
몸 전체에 기운이 돌아왔고, 나는 몸을 일으켜 거울로 걸어갔다.
머리카락이 헝크러져 시야를 가렸지만, 머리카락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거울 앞에 서자,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윤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거울에는 놀란 표정의 아지가 서 있었다.
큭, 놀란 표정도 너무 귀엽잖아!
이번엔 아지의 표정이 귀여워서 참을 수 없어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큭, 귀여워하는 표정도 귀여워!
내가 생각한 표정대로 아지가 표정을 짓는다….!
이토록 귀엽고 아름다운 생명체가 있다니(?)
방금 자고 일어났기 때문에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지만 오히려 좋다.
정말 친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허물없는 모습이니까!
거울 앞에서 여러 표정을 짓고 있는 나는 드디어 생각의 끝에 다다랐다.
이건 꿈이다!
달콤한 꿈이다!!!!!!
보통 꿈을 꿀 때는 내가 있는 이 곳이 아무리 어색해도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 꿈이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 꿈에서 깨 버리기 마련이다.
지금의 나는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날 것이다.
현실로 돌아가기 전, 아지의 얼굴을 마음껏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국장아.
나는 너가 너무 좋아.
== 고백해줘서 고마워.
사실, 나도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
거울 속 아지가 내 고백을 받아주고 있다.
설레는 표정으로 말이다.
살짝 현타가 오긴 하지만…! 뭐 어때, 꿈이니까.
== 너 누구야.
== 으아아ㅏ아!!!!!!
혼자 있다고 생각한 이 방 안에서 중년 남자의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고, 온 몸이 바르르 떨렸다.
누가 말한 거지?
분명 이 방 안에는 나 밖에 없었는데!
== 누구…세요? 어디 있는 거에요?
== 여기.
== ????
아지의 방으로 보이는 이 곳은 원룸으로, 작은 방 한 개와 더 작은 주방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기분 나쁘게 들려오는 저음의 목소리는 주방 쪽에서 들렸다.
그러나 주방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 분명 아무도 없는데….
== 여기라고! 여기!
주방에 다가가 자세히 보니 깔끔하게 정리된 아지의 방에 어울리지 않는,
액체 슬라임 같은 덩어리가 올려져 있었다.
== 설마, 이 액체괴물?
== 액체 괴물이라니 말이 심하네.
== 으아! 액괴가 말을 한다!!!
목소리는 분명 액체 슬라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슬라임을 한 세 통정도 한 곳에 부은 양의 슬라임은 꿈틀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 묻는 말에 대답해.
너 누구야.
== 그러는 너는 뭔데!
방금 전 까지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지만,
이 기분 나쁜 액체 괴물을 본 순간부터 잠에서 깨고 싶어졌다.
== 슬라임처럼 생겨서 말이 안 통하는 건가?
이렇게 변하면 어때?
액체 괴물은 순식간에 모양을 바꾸어 하X보의 곰돌이 젤리처럼 변했다.
크기는 인형 뽑기에서 나오는 인형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었다.
== 자, 친숙한 모양이 됐지?
나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호자 같은 거야.
이제 너가 누군지 말해.
== 꿈 주제에 설정이 방대하네.
== 뭐?
== 빨리 잠에서 깨야 해.
이상한 게 더 나타나기 전에!!!
이제 충분하다. 이 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나는 머리카락을 잡고 잡아당겼다.
아지의 머리카락은 꽤 길었기 때문에, 쭉 잡아당기기 편했다.
== 그만해! 여긴 꿈이 아니라고!
== 꿈이 아니면, 내가 아지가 될 리가 없잖아!
으… 왜 안 깨지는 거야!
== 진정하라니까!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내 뺨을 내가 때려봐도 내 눈 앞에는 여전히
곰돌이 모양의 액체 괴물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뭐지?
꿈이 왜 안 깨지지?
== 믿고 싶지 않겠지만, 너는 다른 세계로 왔어.
== 조용히 좀 해봐. 액체 괴물.
== 수호자라니까!
머리 그만 잡아당기고, 내 말 좀 들어.
통증이 그대로 느껴진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다.
마치 현실처럼…
나는 잡고 있던 내 머리카락을 놓았다.
== 이제 좀 진정이 되었나보군?
==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깨지겠지?
== 야!!!!!
나는 현관문으로 걸어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곰돌이 액괴가 어느새 날아와 내 손과 문 손잡이에 들러붙어
내가 손잡이를 돌리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 이거 놔! 액괴!
== 액괴가 뭐야!
그보다, 진정 좀 하라니까!
손잡이를 돌리기 위해 씨름을 하다 진이 빠진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액괴는 그제서야 내 손을 놔주었다.
꿈을 깰 방법이 사라지자, 나는 멍한 상태가 되었다.
== 이제 내 말이 좀 들려?
== ……….
== 너, 윤아지가 아니지?
== 응.
== 그러면, 넌 누구야?
== 나는, 이국장.
== 윤아지의 학교 선배구나?
나는 깜짝 놀랐다. 나를 어떻게 아는 거지?
== 액괴, 너 나 알아?
== 알지.
== 어떻게 알아?
== 말했잖아. 나는 이 세계의 수호신 같은 존재라니까.
== 수호신? 그러면 잠에서 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이제 충분해. 돌아가고 싶어.
== 안타깝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나도 몰라.
== 원래 세계? 그럼 여기는 어디야?
== 여기도 하나의 세계야.
너가 원래 있던 곳은 또 다른 세계이고.
== 꿈이 아니라, 다른 세계라는 거야?
== 이제야 말을 듣는구나.
맞아. 여긴 너가 있던 곳과 다른 세계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일단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지가 되어 있고, 내 앞에 액체괴물이 말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어?
제발 알려줘!!
== 나도 모른다니까.
== 수호자님! 제발!!
== 돌아갈 방법은 모르지만, 너는 다른 세계에 왔고,
너는 여기 세계에서 당분간 적응해야 해.
== 적응…?
== 네 몸을 봐. 지금 윤아지의 몸이지?
== 응.
== 너는 이 세계에서 윤아지로 살아가야 해.
== !!!!!!!!
내가 아지로 살아가야 한다고?
불가능하다.
하루만 지내도 내가 아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눈치챌 것이다.
== 너가 언제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윤아지로 삶을 살아가야 해.
너는 윤아지가 할 만한 행동들을 하고, 윤아지처럼 생각해야 해.
너가 윤아지의 삶을 바꾸거나,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
== 그건 안 돼.
나는 아지가 될 수 없어.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내가 아지처럼 행동하는건…. 불가능해.
== 살면서 사소한 행동들은 달라도 돼.
하지만 큰 줄기의 흐름은 바꾸면 절대 안 돼.
== 만약, 흐름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데?
== 너가 영영 사라져버릴 수도 있어.
아니면 무한루프에 갇혀 버릴지도.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아지로 살아가라고?
아지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 아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섣불리 고백을 해서 그런 건가?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과분한 사람에게 고백을 해서 신이 벌을 주신 건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으면, 모두 다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1화 끝-
노벨피아 - 웹소설로 꿈꾸는 세상! - [TS] 짝사랑이 되어, 고백을 받는다
좋아하는 후배한테 고백을 하는 순간, 정신을 잃고 과거로 튕겨져 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고백했던 후배의 몸에 들어가버렸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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