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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여장소설] 연애요람

[여장소설] 연애요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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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화까지 왔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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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김탁민의 친구, 정우배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바로 김탁민의 자취방이었다.


-- 이 새끼는 왜 전화를 안 받냐?
    진짜 군대갔나?


벌써 개강이 며칠 남지 않는 2월 말,
정우배는 그 동안 김탁민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에는 무슨 일 때문에 앞으로 만나기 힘들 거라는 말 뿐이었다.


-- 어디 돈 벌러 새우잡이 배라도 타러 갔나?
    아니면 어디 코인이라도 하다가 망한거 아냐?


김탁민이 그런 철 없는 성격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아무 말도 없이 잠수를 탄 것은 처음이었다.


띵-동


김탁민이 살았던 자취방의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더 누르며 기다렸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누군가 사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 휴대폰도 전원이 꺼져 있다고 나오고, 방에도 없는 것 같고,
    탁민이 어머님한테 여쭤봐야 하나?


정우배는 일단 김탁민이 살았던 오피스텔을 나와, 사거리에 멈춰섰다.
김탁민의 어머니 번호는 예전 고등학교 다닐 떄 김탁민이 야간 자율학습을 몇 번 도망가서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 알고 있었다.


정우배는 사거리에 멈춰서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연결음 끝에 김탁민의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 네~ 여보세요~

--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탁민이 친구 정우배입니다.

-- 아~ 우배구나.
    탁민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탁민이가 요즘 연락이 안 돼서요.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 아~ 탁민이가 말이지!
    지금 교회 일로 여...


탁 소리와 함께 귀에 대고 있던 정우배의 휴대폰은 뒤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졌다.
정우배는 뒤를 돌아보았다.

정우배는 모르는 여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가쁜 숨을 내쉬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
=====


입학식이 끝나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김탁민은 송시아가 마련한 투룸 자취방에서 지내며 여전히 여장을 하고 생활했다.

자취방에 있을 때 만이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편하게 있고 싶었던 김탁민이지만,
조금이라도 원래의 김탁민의 모습이나 태도가 나올 때 마다 송시아는 계속 지적했다.


-- 은송님.

-- 왜?

-- 그런 모습으로 앉아서 게임하지 말라고 했죠!

-- 이렇게 게임하는 게 어때서...


김탁민은 본가에 있던 게이밍컴퓨터를 자취방에 가져다 두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 그렇게 삐딱한 자세로 하면 척추도 안 좋아지고,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정체를 들킬 수도 있다구요.

-- 이런걸로 밖에서 김탁민인 걸 들킬거면 진작 들켰어.
    돌아다니다 과제도 같이 하고 시험공부도 같이 했던 동기들 만나도 전혀 모르더만.


김탁민은 가끔식 먹을 걸 사거나 필요한 걸 사러 바깥에 여장을 한 채로 자주 돌아다녔는데,
수수하게 따뜻한 잠옷바지와 패딩을 입고 돌아다니다 친구들을 마주쳐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가발을 써서 얼굴이 안 보이는 모습일 때에도 여자로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 그래도 들키는 건 한 순간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구요.
    들키면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니까 조심하세요.

-- 알았어.
    제대로 앉을게.


아무래도 송시아의 집에 얹혀 사는 만큼 집주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김탁민이었다.
김탁민은 원래 살던 자취방도 월세 기간이 끝났으며,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면 자취 비용으로만 50만원 넘게 들었다.
이 50만원을 벌기 위해 매주 김탁민은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알바를 했었다.


-- 어우.. 구팡알바... 끔찍해.


김탁민은 자세를 고쳐앉았다.
김은송이라는 여자로 살아가는 만큼 이제 알바는 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김탁민의 엄마도 이제 자생교를 믿고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자주 용돈을 줬고,
송시아가 음식이나 옷은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따로 크게 생활비가 드는 것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김탁민과 송시아는 송시아의 방에서 같이 요가매트 위에서 여러 자세들을 취하고 있었다.


송시아는 가볍게 자세를 취하며 옆에 있는 김탁민에게 말했다.


-- 자, 두 손은 바닥을 짚고, 두 발은 약간 벌려줍니다.

-- 흐읍!


김탁민은 하늘색 요가복을 입고 있었다.
요가매트 위에서 김탁민은 바들거리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이 상태에서 엉덩이를 취대한 들어올려줍니다.
    몸이 쭉 늘어나도록 최대한 들어올려주세요.

-- 읍! 하...


김탁민은 10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반면 송시아는 여유롭게 30초 이상을 버티고 있었다.


-- 자세가 무너졌으면 다시 잡으세요!

-- 너무 어렵다고...
    기다려봐.

-- 허리와 척추에 되게 좋은 자세에요.
    척추 스트레치옫 되고, 허리 통증이 있다면 없애줄 수 있어요.

-- 흡.. 하..


김탁민은 자세를 잡았으나 역시나 허벅지와 종아리가 바들바들 떨리다 결국 옆으로 쓰러졌다.



-- 분발하세요.
    김은송은 요가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즐겨 하는 멋진 사람이라구요.

-- 그걸 왜 너가 정하는데...

-- 나중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도움이 될 거에요.


송시아는 꽤나 진지했다.
김탁민은 어디서 배웠길래 송시아가 자연스럽게 요가자세를 잘 하는지 궁금했다.


-- 어디서 배운거야 대체.

-- 교회에 있다 보면 여러가지 하게 돼요.

-- 교회누나 뭐 그런건가?

-- 누나라 많이 불리기도 했었죠.
    이건 기본자세니까 어서 해봐요.

-- 알았어.


30분의 요가가 더 이어진 후, 송시아는 결국 김탁민은 보내주었다.


-- 너도 힘들지? 음료수 사 올게.

-- 저는 그냥 간단한 이온음료 부탁드려요.


김탁민은 송시아의 방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송시아의 카드를 집어 나왔다.
자신보다 어린 송시아의 카드를 쓰는 것이 조금은 자존심 상하지만,
여장을 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지원은 해주겠다고 했으므로, 엄연히 계약사항이었다.


-- 대신 내가 심부름 자주 하잖아.


김탁민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롱패딩 하나를 걸친 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까지 쌀쌀한 날씨 탓에 옷을 껴입어야 하는 탓도 있었고,
몸에 딱 맞는 요가복 모습으로 밖에 나가기도 부끄러웠다.



김탁민은 자취방 밖으로 나온 김에 한바퀴 돌까 싶어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예전에 살던 자취방 쪽도 스윽 돌아보았다.
자신이 예전에 자주 들렀던 편의점에도 슬쩍 들러보았다.


'여기 알바는 그대로네.'


음료수의 바코드를 찍는 알바는 김탁민 자신이 불과 몇 달 전 살았을 때와 같은 알바였지만,
지금의 김탁민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이전에도 김탁민이 자주 왔음에도 특별히 아는 척을 하지 않았기에 원래 관심이 없던 것일지도 몰랐다.


-- 감사합니다.



김탁민은 편의점을 나와 사거리 쪽으로 걸어갔다.
익숙한 거리에 익숙한 인물.... 누군가가 보였다.


-- 뭐야, 우배 아니야?


180은 훌쩍 넘는 큰 키에 쭉 뻗은 기럭지.
김탁민은 30m 앞에 있는 정우배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얘가 이쪽에 올 이유가 없는데....
    설마 나 찾으러 왔나?


김탁민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우배는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김탁민은 멀리 있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렴풋하게 정우배의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 어머니.... 하세요...
   탁민이.... ..... 입니다...


김탁민은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정우배는 지금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과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자취방까지 찾아왔고,
자취방에도 보이지 않자 걱정되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김탁민은 정우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여장, 그리고 미션에 관련된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탁민과 정우배 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정우배가 전화를 하느라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떄,
김탁민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기를 가로챘다.
정우배는 뒤를 돌아보았다.


-- 헉... 헉...


김탁민은 정우배의 휴대폰을 들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김탁민은 정우배의 휴대폰을 보았다.

"김탁민 어머님"


자신의 엄마가 맞는 것을 확인한 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 누구세요?


숨을 고르고 있는 김탁민의 앞에 당황스럽다는 말투의 정우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누구신데 제 휴대폰을 뻇어가신거죠?


김탁민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정우배는 큰 키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탁민의 머릿속은 새까매졌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지금 김탁민은 여장을 한 상태.
지금의 여장한 모습인 김은송과 정우배는 처음 만난 것이었다.


-- 그, 그게!


김탁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이 목소리도 여자목소리에 맞게 연습한 탓에 정우배는 자신을 알아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김탁민은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오히려 뻔뻔하게 가야 한다.
어차피 1년 뒤 김은송은 없는 사람.
적당히 둘러댄다면 어찌돼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 안녕하세요. 오리대 컴퓨터공학과 신입생 김은송입니다!

 


김탁민은 인사를 내뱉었다.

1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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