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돈까스 나왔습니다.
직원분이 3개의 돈까스를 차례대로 들고 왔다.
-- 우와~
-- 엄청 크네요..!
오리대에서 꽤나 유명한 돈까스집이지만, 송시아와 진창훈은 처음이었다.
김탁민은 작년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온 맛집이었다.
-- 진짜 여기는 손보다 크네요..!!
송시아는 왕돈까스를 시켰는데, 자기 손보다 훨씬 큰 돈까스의 자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창훈은 치즈돈까스 정식을 시켰다.
-- 저도 왕돈까스 먹을 걸 그랬네요.
제가 좀 많이 먹거든요.
-- 아~ 제 꺼 조금 가져가세요.
송시아는 자신의 왕돈까스를 1/3 정도 잘라 진창훈에게 주었다.
진창훈은 처음에는 괜찮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 감사합니다.
-- 아니에요 ㅎㅎ
-- 은송님은 매운 거 좋아하시나봐요?
-- 네! 매운 거 잘 먹지는 않는데 좋아해요~
김탁민은 매운 걸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불돈까스를 시켰다.
매운거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맛있게 매운 음식들을 즐겨 먹었다.
작년에도 이 돈까스집에 와서 불돈까스를 자주 먹곤 했었다.
-- 소스가 엄청 빨간데요.
-- 제 꺼가 불돈까스라, 조금 매워요 ㅎㅎ
김탁민은 진창민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묘한 기류는 김탁민에게도, 진창민에게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만드려고, 또는 호감을 주기 위해 눈치를 보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진창민은 김탁민이 자신에게 고백하기 위해 유도(?)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 제 것도 조금 드릴까요? 매운거 잘 드시려나.
-- 아, 아뇨! 매운 거 잘 못 먹어서요.
진창훈은 매운 걸 잘 못 먹기에 바로 손사래를 쳤다.
본능적으로 나온 대답이었지만, 생각해보니 남자로써의 매력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었다.
-- 아하, 잘 못 드시는구나.
-- 한 조각만 주실래요? 잘 못 먹는데 먹어보고 싶어서요.
-- ...??
송시아는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럼 한 조각 드릴게요.
진창훈은 빨간색 소스가 마구마구 발라져 있는 돈까스 한 조각이 자신의 접시로 온 것을 발견했다.
-- 제 꺼 치즈 돈까스도 드실래요?
-- 네. 한 조각만 주세요.
그렇게 돈까스 주고받기를 마친 뒤, 셋은 잠시 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김탁민은 중간에 진창훈이 자신이 준 불돈까스를 먹은 뒤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매워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진창훈이 꽤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김탁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서 고백받은 다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챙겨줘야 겠다.'
지금은 1학년인 스무살 김은송으로 있기에 진창훈과 동기이지만, 원래 김탁민은 이제 2학년이 되므로 1년 선배였다.
자신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해야 하는 희생양이 된 것이 안타깝지만,
돌아가서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챙겨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돈까스를 거의 다 먹었을 떄 즈음, 진창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저희 둘 다 스무살이에요.
송시아는 김탁민이 혹시나 실수하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말했다.
김은송은 스무살 여자로 설정(?)된 상태였다.
김탁민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저도 스무살이에요.
저희 다 동갑이네요.
-- 그러네요. 동갑에 같은 과 동기니까, 자주 봐요.
-- 그래요. 친하게 지내요.
진창훈은 친하게 지내자는 김은송의 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입학식으로 처음 학교에 오자마자 여사친이 두 명 생겨버린 것.
평생 아는 또래 여자 없이 살아온 진창훈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 말도... 놓을까요?
김탁민은 먼저 말을 놓자 말했다.
지금 어느정도 친해져야 나중에 쉽게 둘이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 그, 그래. 은송아.
-- 그래, 창훈아~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의 남녀의 웃음소리가 가게에 울려퍼졌다.
돈까스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김탁민과 송시아, 그리고 진창훈.
진창훈은 본가에서 통학중이라 했다.
-- 둘은 같이 자취한다고 했었지?
-- 응. 저 쪽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어.
우리는 뭐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송시아가 입가에 미소를 띄며 말했다.
김탁민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다.
김탁민이 말했다.
-- 창훈아. 가는 데 어느정도 걸려?
-- 버스 타면 한 30분?
-- 다행이다. 그래도 금방 가는구나.
-- 버스 곧 도착이다.
오늘 재밌었어.
-- 이제 개강하면 보자.
어차피 수업도 많이 겹칠거고, 자주 만나겠지.
-- 창훈아, 잘가~
-- 응. 너희들도 잘 가!
진창훈은 곧바로 오는 마을버스를 탔다.
김탁민과 송시아는 손을 흔들어주다, 마을버스가 사라지자 자취방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오늘 재미있었죠?
-- 응. 지금까지는 그렇게 실감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진짜 여자가 된 것 같았어.
-- 창훈이는 은송님을 완전 여자로 알고 있으니까요.
-- 다행히 티는 안 나나봐.
그 동안 준비한 게 성과가 있었나.
-- 지금 은송님을 보고 좋아하면 좋아했지, 누가 남자라고 의심을 하겠어요?
-- 창훈이는 정말 나한테 관심있는 것 같긴 해.
-- 그래서 아까 창훈이가 고백하게 만든다고 한 거에요?
-- 당연하지. 이렇게 쉬운 방법이 어딨어.
이미 나한테 관심이 있는데, 내가 조금만 잘 대해주면 고백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을 걸?
-- 근데 관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는데요??
-- 남자의 감이라고나 할까...
남자가 예쁜 여자를 볼 때 나오는 눈빛...
-- 지금 본인이 예쁜 여자라는 거에요?
--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런게 있어.
-- 남자의 감을 가진 여자라... 이건 귀하네요.
-- 여자가 아니니까.
김탁민과 송시아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자취방에 도착했다.
지금의 자취방은 송시아가 자생교의 지원을 받아 얻은 자취방으로,
자생교에서 월세장사를 하는 자취방 중 하나였다.
송시아와 김탁민은 투룸 정도의 자취방에서 같이 생활하기로 했다.
김탁민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내고 있었던 원룸의 월세비도 아낄 수 있고,
어차피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송시아와 함께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득이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 제 자취방 괜찮죠?
어제 처음 하룻밤 보냈을텐데.
-- 뭐, 나쁘지 않아.
내 방도 따로 있고.
송시아가 얻은 자취방은 꽤나 큰 사이즈였다.
송시아와 김탁민의 방이 분리되어 있고, 자그맣게 거실도 있는 구조였다.
당연하게도 각자의 방에는 옷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 구두 드디어 벗었네.
이 원피스도 빨리 벗어야지.
김탁민은 입고 있던 옷들을 훌렁 벗어던지고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다.
-- 구두 진짜 발 너무 아파.
-- 익숙해져야죠.
이제 창훈이랑 사귀고 데이트도 하려면 예쁜 신발들 많이 신어야 할 텐데.
-- 무슨 데이트야. 고백만 받는다니까.
-- 감정이 또 그게 막 생각대로 되지는 않잖아요?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김탁민은 자신의 방 침대에 앉아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 오늘 운동화만 신고 다녔으니까 모르겠지.
신발이 딱딱해서 별로 안 걸었는데도 발이 아프다고.
-- 은송님보다 구두는 제가 더 많이 신었을걸요?
-- 진짜 여자들이 대단한 것 같다니까.
-- 좀만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될 거니까 걱정 마요~
송시아는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준 뒤 방에 들어갔다.
김탁민은 쓰고 있던 가발을 벗고 옆에 있는 가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그 뒤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지운 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웠다.
김탁민은 오늘 오리대 신입생인 스무살 '김은송'으로의 첫 하루를 보냈다.
그 동안 연습했던 하이톤의 목소리 내는 법도 나름 자연스럽게 나왔다.
진창훈이라는 스무살 후배도 김은송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김탁민은 누워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제 자신을 김은송이라고 아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을 여자라고 아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묘하면서 재미있으면서 신기한, 그런 감정이 요동쳤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그 무언가에는 짜릿한 해방감이 깔려 있었다.
김탁민은 누운채로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옷장을 보았다.
열려 있는 옷장 속에는 여자 옷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송시아가 김탁민의 옷 사이즈에 맞춰서 준비해 놓은 옷들이었다.
이제 입은 옷은 두 벌 밖에 되지 않지만, 다른 옷들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 정신차리자.
김탁민은 이러다가 여장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은 채로, 김탁민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
=====
김탁민의 친구, 정우배는 사거리에 서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바로 김탁민의 어머니한테 거는 전화였다.
김탁민이 전화도 안 받고, 자취방에도 보이지 않자 걱정되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 네~ 여보세요~
--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탁민이 친구 정우배입니다.
-- 아~ 우배구나.
탁민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탁민이가 요즘 연락이 안 돼서요.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 아~ 탁민이가 말이지!
지금 교회 일로 여...
탁 소리와 함께 귀에 대고 있던 정우배의 휴대폰은 뒤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졌다.
정우배는 뒤를 돌아보았다.
정우배는 모르는 여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가쁜 숨을 내쉬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1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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