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들/[여장소설] 마음대로

마음대로 스페셜 - 부산 여행기 (2)

라치남 2021. 6. 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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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스페셜 - 부산 여행기 (2)

 

 

기차역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만수가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캐리어 덕분에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 지애야!!

-- 너는 무슨 너 몸통만한 캐리어를 들고 왔어?

--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많아져버렸네


무슨 해외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부산 1박2일 잠깐 갔다 오는 건데 이렇게 많이 챙기다니,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 근데 지애야. 일부러 옷을 그렇게 입은 거야...?

-- 아... 그게;;


마라탕집에서 들었던 윤정이의 말은, 내가 남장을 하라는 소리였다.

여행을 가면 꾸미기 마련이고, 예뻐보이기 마련이다.
만수가 혹시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그저 친구끼리 가는 여행임을 알리기 위해 
남장을 하고 출발하라는 소리였다.
확실히 선을 그으라는 얘기.


솔직히 말이 남장이지, 예전 김수철일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남장을 하기 싫었지만 윤정이가 출발하기 전까지
달라붙어 꼭 해야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청바지에 무난한 긴팔 티, 그냥 무난한 디자인의 옷이었다.
기차타고 가는 동안까지만 이 상태로 있고,
부산 도착해서는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어때, 남자처럼 보여?

-- 아니. 전혀..?

-- 엥?


나름 예전 모습을 되찾았는데도 불구하고,
만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 그냥 지애 너 같은데?
    그 얼굴로 누가 남자로 생각하겠어.

-- ;;;;


뭔가 기분 좋기도, 기분 나쁘기도 한 그런 만수의 말이었다.




-- 왜 남장을 했냐면, 우리 둘이 이렇게 1박2일 떠나는 건 처음이잖아.

-- 그렇지.

--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너랑 둘이 가는 걸 오빠에게 허락 맡기가 힘들었어.

-- 그렇지... 형 입장에서는 너가 다른 남자랑 가는 걸 허락할 수 없지.
    나도 조르긴 했지만, 당연히 안될 줄 알았어.

-- 내가 오빠랑 전화할 때 마다 계속 아무일 없을 거라고 빌어서
    겨우겨우 허락 맡았는데, 가는 대신 이 모습으로 가래.


차마 윤정이가 시켰다고 할 수는 없어서,
민국이 오빠를 팔아버렸다....


-- 우리 이미 우정 여행인데,
    걱정 안 해도 돼.
    혹시 내가 이상한 짓 하면 맘껏 때려.

-- ㅎㅎㅎ 알았어. 빨리 가자.


사실 남장이라 해봐야 별 것 없었다.
그냥 남자 옷을 입고, 머리만 모자로 가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모습에서도 누가봐도 여자로 볼 것이 분명했다.




-- 음... 여긴가?
    타는 곳이 여기가 맞나?
    저 쪽으로 가야 되나?

-- 저기서 타는 거야. 이 누나만 따라와.

-- 캐리어 무거우니까 나 줘. 내가 두 개 끌게.

-- 너 캐리어나 잘 챙겨.


민국이는 긴장한 탓인지 허둥지둥댔다.
어쩔 수 없이 또 누나(?)인 내가 이끌어야 했다.




열차를 탑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수는 잠들었다.
나랑 여행간다고 신나서 밤새 뒤척이다 잠을 못 잤나 보다..











나도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감고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던 와중,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 뭐야, 수철이잖아?
    너 여기서 뭐 해?

-- 음...?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떠 보니, 수정이가 내 앞에 있었다.

엥? 수정이가 왜 기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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